🟢 유비(劉備)의 아내 검협선자(劍俠仙子) 손상향(孫尙香) 이야기 1

2022. 12. 19. 06:54카테고리 없음

🟢 유비(劉備)의 아내 검협선자(劍俠仙子) 손상향(孫尙香) 이야기 1

손견의 딸이고, 손책, 손권의 배다른 여동생이다.
즉, "부인을 잃고 병사도 잃었다"는 이야기의 여주인공이다.
그녀는 오빠인 손권에게는 좋은 미끼였다. 중년에 상처한 유비를 동오로 불러들여 인질로 삼고 형주를 되찾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오국태는 장모로서 사위 유비를 갈수록 좋아하게 되고, 여기에 교국로는 뇌물을 받고 곁에서 부추긴다.
원래는 거짓혼인이었지만 나중에는 진짜가 되어 버린다.
49세의 유비는 돌연 이 미녀를 얻게 되니 기분이 좋아져서 자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다행히 제갈량이 사전에 잘 예측하여, 미리 3개의 금낭묘계를 조자룡에게 주어놓았기에 비로소 유비는 순조롭게 형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유비는 아마도 강산보다 미인을 사랑한 정성(情聖)이 되었을 것이다.

1. <<삼국지>>에서는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손부인(孫夫人)은 손권의 여동생이다.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유비가 형주를 차지할 때, 손권은 유비를 겁내고 꺼려했다. 그리하여 여동생을 유비에게 주어 부인으로 삼게 함으로써 동맹을 강화했다. 손부인은 재주가 있고 민첩하며 강인하고 용맹했다. 그녀의 오빠들의 성격을 닮았다. 항상 곁에는 시비 100여명을 두었는데, 모두 칼을 들고 시립해 있었다. 유비가 매번 그녀의 방에 들어갈 때마다 마은 속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제갈량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주공(유비)은 공안에 있을 때, 북으로는 조공(조조)의 강성을 무서워하고, 동으로는 손권의 핍박을 받았으며, 가까이는 손부인이 곁에서 변란을 일으킬까봐 두려워했다...." 나중에 유비가 익주(지금의 사천)로 들어가면서, 손부인은 형주에 남겨두고, 조자룡으로 하여금 영유영사마를 맡게 하여 형주를 지키게 한다. 이때 손부인은 스스로가 손권의 여동생이라는 신분을 내세워 교만하고 횡행했다. 자주 동오의 병사를 데리고 형주를 종횡하며 불법을 저질렀다. 손권은 유비가 서쪽으로 익주를 정벌하러 간다는 말을 듣고는 배를 많이 보내어 손부인을 맞이하였다. 부인은 후주 유선을 데리고 동오로 돌아가고자 했다. 다행히 제갈량이 즉시에 조자룡과 장비를 파견하여 가로막고 유선을 빼앗아 되돌아온다.


2. <<삼국연의>>에서는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손부인은 손권의 여동생이고,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유비가 오나라에서 빌린 형주를 돌려주지 않자, 노신은 이에 책임을 느낀다. 주유는 한편으로는 친구를 구하는 측면에서 또 다른 측면으로는 나라를 위하여 손권에게 글을 올려 '미인계'를 쓰자고 한다. 즉 여동생을 유비에게 보내어 부인으로 삼게하여, 그의 뜻을 꺽고 부하들과 사이가 멀어지게 하는 것이다. 손부인은 재주가 있고, 민첩하며 강인하고 용맹했다. 그녀의 오빠들의 성격을 닮았다. 항상 곁에는 시비 100여명을 두었는데, 모두 칼을 들고 시립해 있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제갈량의 금낭묘계에 따라 가짜로 하려던 혼인이 진짜로 바뀌게 되고, 나중에 부인은 유비를 도와서 형주로 되돌아가게 되며, 가는 길에 오나라의 장수들을 노하여 혼내준다. 나중에 유비가 익주로 들어가면서 조운을 영유영사마로 하여 형주를 지키게 한다. 이때 손권은 유비가 서쪽으로 익주를 정벌하러 간다는 말을 듣고는 주선(周善)으로 하여금 배를 끌고 가서 손부인을 데려어도록 한다. 부인은 후주 유선을 데리고 오나라로 떠났다. 다행히 조자룡과 장비가 강을 막고 유선을 다시 빼앗아 온다. 이릉의 전투에서 유비가 패배하자, 유언비어가 오나라에 들어왔다. 유비가 이미 죽었다는 것이다. 손부인은 상심하여 서쪽을 바라보며 통곡하다가 강물에 몸을 던져 자결한다. 나중에 묘를 세워주니 "효희묘(梟姬廟)"라고 한다.


3. 손상향의 성명문제

정사 <<삼국지>>에는 이 손부인의 성명이 나와 있지 않다. 소설 <<삼국연의>>에서는 손견의 자녀를 소개하면서 딸 중에서 손인(孫仁)이 있다고 되어 있다. 즉, 제7회를 보면, "손견은 네 아들이 있는데 모두 오부인 소생이다: 장남은 손책으로 자는 백부이고, 차남은 손권으로 자는 중모이고, 삼남은 손익으로 자는 숙필이고, 사남은 손광으로 자는 계좌이다. 오부인의 여동생은 손견의 둘째부인이다. 역시 1남1녀를 낳았다. 아들은 이름이 손랑이고 자는 조안이며, 딸은 손인(孫仁)이다. 손견은 또 유씨에게서 아들 하나를 낳으니 이름이 손소(孫韶)이고 자는 공례이다."라고 되어 있어 딸은 딱 1명밖에 소개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나중에 주유가 미인계를 쓸 때 언급한 손권의 여동생은 분명히 이 손인일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실은 삼국연의에서 남존여비의 시대이므로 여인의 이름을 언급하는 경우가 아주 드물다. 이 손인을 여자로서 이름이 언급된 딱 2명의 하나인 것이다)

그러나, <<삼국연의>>를 근거로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정확치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배송지(裴松之)가 <<삼국지>>에 주석을 달 때, "손인(孫仁)"은 손견의 서자(庶子)인 손랑(孫郞)의 별명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즉, 손인은 사실 남자이다. <<삼국연의>>는 분명히 이름을 착각한 것이다.

"손상향" 혹은 "상향"이라는 이름에 대하여는 최초로 나오는 것은 희극(戱劇)에서이다. 그리고 이 이름은 분명히 <<삼국지>>와 <삼국연의>>에 나오는 손부인이다. 현재 사람들이 모두 잘 알고 있는 이름은 바로 역사상으로는 존재하지 않았었지만, 희곡에서만 나타나는 "손상향"이 되어 버렸다.


4. 손상향은 노처녀였던가?

손상향이 유비와 결혼했을 때, 그녀의 나이가 몇살이었을까? 손권은 182년에 태어났고, 적벽지전(208년)에 26살이었다. 그렇다면, 손상향의 나이는 최대한 26살을 넘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동생의 나이가 오빠보다 많을 수는 없으므로...그리고, 손견은 191년에 '강을 건너 유표를 칠 때" 황조의 군사에게 사살되므로, 손상향이 그때 모친의 뱃속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적벽지전때에는 17살이 될 것이다...이로써 볼 때, 손권의 여동생인 손상향은 최소 17살, 최대 26살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렇다면, 개략 스무살 부근으로 보는 것이 가장 적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