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을 뒤흔든 女人 또 하나의 권력자 ‘태후’들 (8) - 북위 풍(馮) 씨

2022. 12. 13. 06:37카테고리 없음

🟢 중국을 뒤흔든 女人 또 하나의 권력자 ‘태후’들 (8) - 북위 풍(馮) 씨

효문제보다 앞서 개혁을 단행한 여인_ 북위 풍(馮) 씨

풍태후의 공적 때문에 북위는 강성한 국가가 성장했다.

탁발황拓跋晃(428-451)의 아들 탁발준拓跋濬(440-465, 재위 452~465)이 문성제文成帝로 보위에 오른 지 4년 뒤인 456년에 열네 살의 풍씨馮氏를 황후로 맞았습니다.

그녀가 이후 태후가 돼 명성을 떨친 문명태후文明太后 풍태후馮太后입니다.

그해 탁발준은 겨우 3세에 불과한 탁발홍拓跋弘을 황태자로 삼았는데 북위의 자귀모사子貴母死(황제의 아들 중 하나가 황위를 이을 황태자가 되면, 그를 낳은 생모를 죽이는 북위의 제도) 전통에 따라 탁발홍의 생모 이귀인이 자진했습니다.

사실 탁발부 선비족鮮卑族은 과거 대국代國시절만 해도 간신히 모계사회의 전통에서 벗어난 상태였습니다.

한족의 영향을 받은 후 비로소 부계가 황통을 잇는 한족의 전통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도무제 탁발규는 우환을 미연에 없애기 위해 자귀모사를 북위의 전통으로 만들었습니다.

수단이 비록 잔인하기는 했으나 그 취지만큼은 왕조의 만세 기업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풍태후는 북연의 귀족이었던 풍씨 집안에서 출생했습니다.

북연을 떠나 북위에 의탁했다가 집안이 몰락하자 어린 딸(풍태후)은 선비족이 세운 북위北魏의 궁중에서 후궁으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궁중에서 미모와 지식을 겸비한 여성으로 평가되어 태자 탁발준의 황후가 되었습니다.

465년 황위에 오른 탁발준이 26세로 사망하자 어린 이복생異腹生 아들 탁발홍이 헌문제獻文帝로 황위를 계승하게 되었고 풍태후는 섭정으로 정치력을 발휘했습니다.

풍태후는 황제를 능가하는 권력을 행사하며 자신에게 대항했던 헌문제를 폐위하고 다섯 살의 탁발굉拓跋宏(효문제)를 등극하게 하여 자신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

하지만 강력한 권력을 기반으로 국가의 기틀을 세우고 개혁적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부패한 관리를 척결하고 국가의 토지제도를 개선하여 균전제均田制를 실시하여 농민들에게 고르게 땅을 배분했습니다.

이러한 풍태후의 공적 때문에 북위는 강성한 국가가 성장했지만 폭정으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기에 악행을 행한 인물로 평가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