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비(劉備)와 함께 전장을 떠돈 홍안박명 (紅顔薄命) 소열황후(昭烈皇后) 감부인(甘夫人)

2022. 12. 10. 07:46카테고리 없음

🟡 유비(劉備)와 함께 전장을 떠돈 홍안박명 (紅顔薄命) 소열황후(昭烈皇后) 감부인(甘夫人)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생몰연대도 정확하지않다.
유비(劉備)의 부인이자, 유선(劉禪)의 생모이다.

건안 13년(208), 조조군이 당양(當陽) 장판(長阪)에서 유비를 추격하자 유비군이 큰 혼란에 빠진다.
조운이 구해줘 어려움을 면한 그녀는 적벽대전 후에 죽는다.

건흥(建興) 원년(223) 유선이 황제로 즉위한 뒤, 그녀의 시호를 소열황후(昭烈皇后)로 추증한다.

유비(劉備)가 예주(豫州)에 있을 때 그녀를 자신의 첩실(妾室)로 삼았다.

감부인(甘夫人)은 정사(正史)에 기록된 유비의 두 번째 첩실에 해당된다.

유비는 잦은 도망 생활로 인해 본처와 자식을 여러 차례 잃었으므로, 첩이었던 소열황후(감부인)가 집안일을 관리했다.

유비가 장판(長坂)에서 조조(曹操)의 5천 정예기병(호표기)에게 패퇴하면서 감황후와 아두(阿斗)를 버리고 도주했을 때, 조운(趙雲)에게 의지하여 겨우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소열황후 사후, 남군(南郡) 땅에 안장되었으며, 222년에 황사부인(皇思夫人)으로 추증되었고 촉으로 이장되었다. 유선이 즉위하자 소열황후로 높여 추증하였다.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초대 황제인 소열제 유비의 황후이다.

패현 출신으로 유비가 예주에 부임해 있을 때 첩으로 맞아들였다.
유비는 본처를 여러 차례 잃었는데 여러 차례 패하고 도주하면서 가족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녀가 항상 집안일을 관리하였다고 한다.
삼국지연의와 달리 오히려 미부인이 정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첩의 신분으로 무사히 유비를 따라다니며 안주인 노릇을 한 것으로 보아 꽤나 강인한 여성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형주에서 유선을 낳았으며 당양
장판파에서 조운의 보호에 의지하여 난을 면하였다.
이 일은 삼국지연의에서 조운이 아두와 미부인을 구출하는 명장면의 모티브가 되었다.
유비가 형주를 차지한지 얼마 안되어 사망했으며 남군에 매장되었다.

관우가 패사하고 형주를 상실한 이 후 장무 2년(222년)에 황사부인으로 추증되고 영구를 촉으로 이장하던 중 유비가 병사하였다.
유비와 성도의 혜릉에 합장되었으며 제갈량이 상서를 올려 소열황후로 추증되었다.
새로운 황제인 유선이 감부인의 친아들임을 생각하면 이는 당연한 조치이다.
감부인의 신분 때문에 유선이 유비의 장자이긴 하지만 온전한 적장자라고는 하기 어렵다.
위에서 서술한 대로 감부인은 연의의 내용과는 달리 유비의 첩이었으며 유비가 황제가 되기 이전에 사망했고, 황제국 촉한이 건국되었을 때 황후는 오의의 누이 오부인이었으며 유비 사후에는 그녀가 태후가 되었고, 오부인 소생인 유영과 유리도 있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유선이 스무스하게 세자 - 태자 - 황제의 자리에 오른 것은 생각보다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유봉이 유비가 그가 죽는것을 원치않았음에도 스스로 목숨을 내놓아야 했던데에는 지은 죄가 큰것도 있지만 이런 복잡한 사정도 한몫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러 창작 매체들에서 부용이란 이름으로 등장하는데 부용은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에서 창작된 인물이며 이를 기초로 한 창작물에서 채용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