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국지전투 - 여포(呂布)의 최후 하비 전투(下邳 戰鬪)

2022. 12. 10. 06:54카테고리 없음

🔴 삼국지전투 - 여포(呂布)의 최후 하비 전투(下邳 戰鬪)

하비 전투(下邳 戰鬪)는
198년 서주의 하비를 목표로
조조와 여포가 싸운 전투로, 조조는 이 전투에서 승리하여 서주를 되찾고 여포는 처형된다.

건안3년(198)여포는 다시 원술과 연합하여 조조에게 반기를 들었으며 고순을 파견하여 소패에 있는 유비를 공격하여 쳐부쉈다.

- 위서 여포전 中

시작은 여포의 유리한 위치선점으로 시작되었다 . 가장 먼저 조조의 ' 전초 부대 ' 라 할수 있는 유비를 쳐부숴 소패를 장악하였으며 , 생략되었으나 하후돈의 청주병 부대까지 격파하였으니 , 방어측인데다 초전에서 승리한 여포군의 사기는 극도로 높았을 것이라 짐작되는 바이다 .

그러나 조조군은 수와 질에서 모두 앞선다 . 허저가 이끄는 부대가 북쪽 소관과 태산 지역으로 진격하여 장패 부대를 하나하나 묶어 나가고 , 진등 , 진규 부자의 배반을 이용하여 한번에 소패와 서주를 손에넣고 여포의 부대에게 일승을 거둠으로써 , 한번의 싸움에 모든걸 잃은 여포가 마지막 남은 성인 하비성으로 들어감으로써 하비 전투는 시작된다 .

조조는 직접 여포를 정벌하기 위해 여포의 성아래에 이르러 여포에게 편지를 보내어 조조와 결합하는 것과 원술과 결합하는 것의 이해관계를 설명해주었다.

여포가 투항하려고 하자 진궁 등은 자신들이 지은 죄가 깊다는 것을 생각하여 그의 생각을 저지하였다.

조조군 17만여 명에 의해 하비성은 포위되었다 . 조조의 형식적인 항복요구로 시작된 하비전투는 3달간 이어진다 .

[ 여포가 투항하려고 했다는 부분은 왠지 여포전이 위서의 일부여서 그런지 폄하가 있기는 한것같다 . ]

그런데 여포가 사람을 파견하여 원술에게 구원을 요청하니 원술은 스스로 기병 천 여 명을 이끌고 전쟁에 나섰지만 패배하여 달아나 돌아가서는 성을 지키고 감히 나와서 싸우려 하지 않았다.

원술역시 여포를 구원할 수 없었다. 여포는 비록 용맹스럽지만 무모하고 의심과 질투가 많고 그의 부하를 통제할 수도 없었으며 단지 몇몇 장수들만 믿었다. 그러나 여러 장수들도 서로간에 의견이 같지 않아 서로 밎지 않고 이로 인하여 싸울 때마다 대부분 대패하였다.

보다시피 독자들이 아는 여포의 모습이다
비록 폄하가 있기는 하지만 이 모습과 크게는 다르지 않은것 같다 . 중요한 부분은 원술의 구원 부분인데 , 구원이 실패했다는 연의의 부분과는 다르다 .

[ 여담이지만 , 스스로 황제라 하던 원술이 이끌고 나간 규모가 1천여 명이었다는 것을 보면 성의 세력약화가 쉽게 눈에 들어온다 . 참고로 이곳에 나온 모든 부분은 위서 여포전의 일부들이다 . ]

그러나 하비성은 확실히 탄탄했고 , 그곳에 틀어박힌 여포가 굳게 지키며 방어함으로써 시간은 3달이나 흘러간다 .

이미 겨울이 와서 실패할 것만 같았던 조조의 동정군에게 위속과 , 송헌 , 후성이라는 변수가 나타난 건 이때였다 .

조조가 참호를 파고 포위한 지 석 달만에 여포의 진영에 있는 사람과 위아래에 있는 사람과의 마음이 달라 그의 장수 후성 송헌 위속은 진궁을 묶어버리고 그들의 부하를 이끌고 와서 조조에게 투항했다.

여포는 직속 부하들과 함께 백문루에 올랐다 포위망이 좁혀어자 여포는 하는 수없이 내려와 항복했다

하비성의 함락 부분이다 . 여포가 위속 등에 포박당했다는 부분 , 등등 우리가 아는 부분과 다른 부분이 많다 .

이렇게 조조의 동정군의 승리로 끝난 하비전투의 전후처리에 관한 위서 여포전에 올라와있다 .

드디어 여포를 사로 잡았는데 여포가 말했다.

"너무 꽉 조이게 묶었으니 조금 느슨하게 하십시요"

조조가 말했다.

"큰 호랑이를 묶었으니 부득이 꽈 조여야 한다."

여포가 요청했다.

"명공께서 근심으로 여기던 것중세나 나 여포보다 더 지나친 것은 없습니다. 이제 이미 항복을 했으니 천하에 근심거리가 될 만한 것이 없습니다. 명공께서 보병을 거느리고 나 여포로 하여금 기병을 거느리게 하면 천하를 쉽게 평정할 것입니다"

조조는 의심하는 기색이 있었다. 유비가 앞으로 나와서 말했다.

"명공께서는 여포가 정건양과 동태사를 섬기는 것을 보지 않았습니까?"

이 말을 듣고 조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포는 손가락질하며 유비에게 말했다.

"이 녀석은 가장 믿지 못할 놈이구나!"

결국 여포를 목매달아 죽게 했다. 여포와 진궁 고순등은 목이 베어 허장까지 옮겨졌으며 그런 후에 그들을 매장했다.

조조가 진궁을 사로 잡았을때 진궁에게 그의 노모와 딸을 살려주어야 할지 죽여야 할지를 물으니 진궁이 대답했다.

"제가 듣건대 천하를 효로서 다스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피붙이를 끊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저의 노모가 살고 죽는 것은 명공에게 달려 있지 제 뜻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조조는 그의 노모가 여생을 마칠 때까지 불러서 봉양해 주었으며 진궁의 딸도 시집을 보내 주었다.

이로써 조조가 서주 , 예주 , 연주와 회남 지역에 세력을 뻗침으로써 , 관도전투 이전의 양강의 세력판도가 완성된다 . 비록 이후 유비가 서주를 일시 장악했으나 , 이 양강의 세력판도를 변화시켰다기엔 지나치게 조조에게 타격을 주지 못했고 , 점거시간이 짧았기에 , 치지 않는것이 좋을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