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을 뒤흔든 女人 또 하나의 권력자 ‘태후’들 (2) - 동한의 등수(鄧綏)

2022. 12. 7. 01:20카테고리 없음

🟢 중국을 뒤흔든 女人 또 하나의 권력자 ‘태후’들 (2) - 동한의 등수(鄧綏)


2. 전진을 위해 한 걸음 뒤로 물러설 줄 아는 여인_ 동한의 등수(鄧綏)

재능 있는 여인 반소(反蘇)가 『한서(漢書)』를 쓰기 위해 황가의 동관 장서각에서 자료를 찾으려 했다.

그래서 당시 황제인 동한 화제 유조에게 청했더니 황제가 그녀를 불렀다.

당시 화제는 서로 시기 질투하던 황후 음(陰)씨와 비빈들의 다툼 때문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그러던 중 『한서』를 집필 중인 반소가 여인이 갖추어야 할 덕목에 관한 책인 『여계(誡)』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것이다.

반소를 불러 책의 줄거리를 들은 화제는 후궁들이 이 책을 읽고 깨달음을 얻는다면 자신도 편히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황제 앞에 선 반소는 마지못해 『여계』를 가르치러 입궁하겠다고 대답했지만 내키지는 않았다. 반소는 명문가 출신이었는데, 서한 성제 때 유명했던 반첩여가 바로 그녀의 고모할머니였다.

게다가 그녀의 아버지는 역사학자 반표(反表)이고, 역사학자 반고와 붓을 던지고 군대로 달려간 명장 반초를 오빠로 두었다.

『한서』를 채 완성하지 못하고 반표와 반고가 차례로 죽자 반서가 『한서』를 완성하겠다고 자청한 것이다.

당시에는 여성이 역사서를 쓴 적이 없었을 뿐더러 그녀가 쓰려는 것은 과거의 역사가 아닌 당대 왕조 한의 역사였다.

음황후와 등수는 사실 친척관계이다.

음황후는 광무제 유수의 황후인 음려화(陰呂化)일가였는데, 등수의 어머니가 바로 음려화 황후의 5촌 조카딸이었다.

그리고 등수의 조부는 동한 개국 공신인 태부(太傅) 등우이고 아버지는 등훈이었다.

광무제 유수는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 전에 음려화를 만났는데, 첫눈에 반해 “음려화를 부인으로 맞이한다면 황제 자리에 오른 것만큼 기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해 음려화는 뛰어난 미모와 온순한 성격으로 호족 출신의 황후 곽성통(郭聖統)을 밀어내고 당당히 입궁하여 황실의 일원이 되었다.

화제 유조의 황후 음씨와 귀인 등수도 모두 음려화의 빼어난 미모를 물려받은 덕분에 총애를 받고 있었다. 동갑이었던 음씨와 등수는 화제가 열네 살이 되던 해 모두 태자비 후보에 올랐다.

그런데 갑자기 등수의 아버지가 병으로 죽어 등수는 부친상을 지내고 나서 3년 후에 다시 입궁했다. 등수가 자리를 비운 3년 동안 음씨는 뛰어난 미모와 재능으로 화제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친척 등수의 미모와 실력도 자신과 견주어 결코 손색이 없다는 것을 잘 알았던 음씨는 등수가 다시 궁으로 돌아온다면 분명 자신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음 씨 일가들은 안팎으로 힘을 써 등수가 입궁하기 전에 음 씨를 황후로 만들었다.

이 일은 등수는 물론이고 등씨 일가에게도 큰 타격이었다.

후한의 역사 기록에 등수가 입궁하던 모습을 “그녀의 뛰어난 미모는 좌중을 압도했고 모든 사람이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했다”라고 할 만큼 등수의 미모는 음향후보다도 월등히 뛰어났다.

그래서 등수의 입궁에 음황후가 느끼는 부담은 상당했다.

게다가 등수는 어릴 때부터 남달리 지혜로웠다.

여섯 살 때 사서(史書)를 읽기 시작하여 열두 살 때는 『시경(詩經)』과 『논어(論語)』를 완벽하게 이해했다.

이처럼 등수는 책 읽기를 좋아하고 형제들과 함께 학술적인 지식에 관해 토론하는 것을 좋아했다. 등수가 바느질하기 등 보통 여자아이들이 배워야 할 것에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자 그녀의 어머니는 볼멘소리로 “여자 박사라도 되려는 것이냐?”라며 불평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달랐다.

등수를 보통 여자아이로 대하지 않던 아버지 등훈은 딸과 함께 사회정세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등수는 비록 음황후보다 3년 늦게 입궁했지만 음황후를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강했다.

게다가 등수가 입궁하기 직전, 등씨 가족은 등수에 관한 심상치 않은 소문을 들었다.

그 소문이란 등수가 맨 처음 입궁하려 했을 때 이상한 꿈을 꿨는데, 꿈속에서 그녀가 손으로 하늘을 어루만지다 고개를 들고 푸른 하늘에서 내리는 젖을 마셨다는 것이다.

이 꿈은 ‘하늘을 만지는 꿈을 꾼 요(堯)임금이 제왕의 자리에 올랐고 상(商)나라를 세운 탕(湯) 임금 또한 하늘에 올라가 음식 먹는 꿈을 꾼 뒤에 그렇게 되었으니, 이 꿈은 제왕이 될 조짐을 보이는 꿈이다’라고 해석되었다.

가족 중 누군가가 관상가를 데려다가 그녀의 얼굴을 보여줬는데 그 관상가는 또한 “탕 임금처럼 천하를 다스릴 상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해도 이러한 꿈 해석들은 옛날부터 모두 출세한 사람들이 나중에 자기 입으로 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믿을 만한 것이 못 되었다.

하지만 입궁 전에 등수의 숙부 등해가 그녀에게 은밀히 말했다.

"1,000명의 목숨을 구한 사람의 자손은 크게 된다는 말이 있다.

너의 아버지(등훈)는 과거 석구(石臼)강을 막아 수천 명의 목숨을 구했다.

그러니 하늘에서 분명 우리 가문에 복을 내려 줄 것이다.

게다가 너의 조부(등우)께서 일찍이 ‘나는 단 한 사람이라도 함부로 죽인 것이 없다.

그러니 내 후손 중 뛰어난 자가 날 것이다’라고 말하셨다.

그녀는 ‘가문을 높일 인물’, ‘제왕의 자리에 오를 상’에 대한 의무감도 있었지만, 어릴 때부터 받은 가족들의 사랑과 뛰어난 글 솜씨가 만들어 낸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 나라의 국모 자리에 오르겠다는 당찬 꿈을 가진 그녀가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입궁을 준비하고 있을 때, 별안간 부친상을 당해 3년 동안 상복을 입어야 했다.

3년을 꼬박 채우고 다시 입궁할 준비를 할 때는 이미 황후 자리에 음황후가 앉아 있었다.

등수가 죽고 난 뒤 안제는 집정 능력이 부족해 환관들에게 권력을 내주고 염후(念後)의 섭정까지 받게 된다.

밖으로는 대신이 죽임을 당하고 안으로는 태자가 폐위되면서 동한 왕조는 순식간에 멸망의 길을 걸었다. 그래서 등수의 업적이 더욱 빛을 발한다.

그녀는 동한에서 가장 뛰어난 정치적 업적과 명성을 가진 최고의 황태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