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속의 중국의 악녀 2 - 포사

2022. 12. 5. 20:52카테고리 없음

🟣 역사속의 중국의 악녀 2 - 포사

🟤 포사(褒似) 경국지색 [傾國之色]

중국의 수많은 미인들 이야기중에서도 전설같은 경국지색이 두명 있는데 달기와 포사다. 그 중 포사는 태생부터 나라를 뒤흔들만한 위인같은 설화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워낙 대단한 미인에 주나라를 망하게 만들어 생긴 전설인 것 같다.

일단 포사는 탄생설화가 있는데 용의 침속에서 나타난 도마뱀이 어린 궁녀의 몸 속에 들어가 수십년을 잉태된 채로 있다가 태어난 아기라고 한다. 궁녀는 그 아기를 요람에 태워 강물에 띄워버렸는데 그 아기를 주운 산골 촌부가 키우게 되었고 가난때문에 포성에 사는 사대라는 사람에게 아이를 팔았다. 용이 어쩌고 하는 것이 사실일리도 없거니와 아이를 주웠는데 그 태생을 안다는 것도 이상하다. 이는 이후에 나라에 풍파를 일으킨 포사를 더 악하게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탄생설화일 것이다.

포사는 절세가인으로 14살이 되자 미모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촌에서 자란 아이고 그다지 알려지지는 않았는데 포성사람 홍덕이 포사의 미모를 보고 왕에게 받쳐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거액을 주고 포사를 사서 좋은 옷을 입히고 예법을 가르쳤다. 그리고 주나라 왕인 유왕에게 바쳤다. 워낙에 미모가 뛰어나니 바로 후궁이 되었다.

유왕은 포사가 얼마나 미인이었는지 완전히 빠져버렸다. 원래 왕후와 태자를 폐하고 포사를 왕후로 삼은 후 포사의 소생 백복을 태자로 삼을 정도였다. 그런 포사에게도 단점이 하나 있었는데 웃지를 않는 것이다. 어릴적부터 안좋은 환경에서 자라서 그런지 도통 웃지를 않았다. 미소는 미모를 배가시키지만 아름다운 포사가 웃지를 않으니 유왕은 포사의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 애간장이 탔다. 포사를 웃게 하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게 하려했다.

하루는 궁녀 하나가 비단옷을 입고 지나가다 매화나무 가시에 옷이 걸려 찢어지는 것을 보고 포사가 비단 찢어지는 소리가 좋다고 하자 유왕은 비단을 잔뜩 사서 찢어댔다. 참 단순하고 무식한 행동이다. 그러니 비단을 사대서 찢느라 국고가 줄기 시작했다. 이게 말이되나? 이것도 유왕이 멍청해 국고를 탕진한 것을 포사에게 그 과를 돌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포사를 희대의 요녀로 만든 유명한 일화는 바로 봉화사건이다. 어느날 우연히 전쟁을 알리는 봉화가 피어오르자 각 지역의 제후들이 병사를 데리고 몰려들었다. 그러나 아무일도 없자 괜한 헛고생을 한것에 화를 냈다. 이 상황에 포사는 웃음을 터뜨렸다. 포사가 웃으니 유왕이 가만히 있을리가... 유왕은 시도때도 없이 봉화를 올려 제후들을 엿먹였다. 그러나 양치기소년 이야기처럼 진짜 오랑캐가 쳐들어왔을때 봉화를 올려도 제후들이 구하러 오지 않았다. 제후들이 뒤늦게 알아차리고 군사를 이끌고 왔을 때는 왕은 이미 오랑캐의 손에 죽은 뒤였다.

포사의 행방은 묘연하지만 아무래도 오랑캐가 데려가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미인을 가만히 뒀을리가... 그런데 포사로 인해 주나라가 국고를 탕진하고 봉화를 남발해서 망한 것으로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그게 포사 탓은 아닌 것 같다. 누가 비단을 찢고 봉화를 올리라고 했나. 멍청한 왕과 무관심하고 찌질한 제후들로 인해 나라가 망한 것을 포사에게 덮어씌운것이 아닐까?

⚫️ 경국지색 [傾國之色]

임금이 미혹되어 나라가 위기에 빠져도모를 정도의 미색이라는 뜻으로 뛰어나게 아름다운 여자를 이르는 말

주유왕(周幽王)과 포사

이솝우화의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은 양떼를 잃어버리는 작은 사건을 낳는 데 그쳤지만, 주 유왕(周 幽王)이 미녀 포사(褒似)를 즐겁게 하기 위해 거짓봉화를 올린 일은 중국 대륙 전체를 이후 500여 년에 걸친 대 전란의 와중에 휩쓸리게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양치기 소년의 외침을 외면한 마을사람들이나 오랑캐에게 유린당하기까지 주(周)왕실을 내버려 둔 제후들을 어리석다 말하지 않습니다. 정권의 주장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않으려는 학생들의 불신은 과연 누구의 책임이겠습니까?

⚪️ 서주(西周)
주나라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봉신연의(封神演义) 혹은 봉신방(封神榜)으로 통해 알고 있는 있습니다.
주나라는 상(商)의 주왕(紂王)의 폭정을 못 참고, 주의 문왕(文王), 무왕(武王)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낚시꾼 강태공(姜太公)의 도움을 받아 상나라를 토벌하여 주왕조를 세웁니다.

그 후 주나라는 기원전 1046년 경에 세워진 뒤 종주국으로 군림하다가 기원전 770년에 견융(犬戎)의 침입으로 왕이 살해당하고 원래 수도였던 호경에서 낙읍으로 옮겨가게 되었는데 호경이 서쪽이었고 낙읍이 동쪽이었기 때문에 수도를 옮기기 이전을 서주(西周), 이후를 동주(東周)로 구분합니다.
그리고 서주의 마지막 왕은 오늘의 주인공 주유왕입니다.

⚫️ 주유왕(周幽王)
주유왕은 하(夏)의 걸왕(桀王)과 상의 주왕에 못지않은 폭군이었습니다.
특히 주유왕과 포사의 스토리는 상의 주왕과 달기(妲己)에 비견될 만큼, 폭정을 일삼았다고 합니다.
우선 주유왕과 포사의 스토리를 보시겠습니다.

주유왕은 주나라에 12대 왕입니다. 주유왕은 정치에 관심이 없고 여색만 즐겼다고 합니다.
그는 다른 폭군들과 같이 간언을 하는 충신은 모두 죽이고 본인은 유희를 즐겼다고 합니다.
BC 779년 주나라 유왕이 포(褒) 국을 함락시키고, 포사를 얻습니다. 포사는 뛰어난 미모와 지혜로움으로 주유왕에게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포사가 마음에 든 주유왕은 그녀가 좋아하는 것은 모든 것을 다 해주기 시작합니다. 포사는 왕의 총애를 받아 아들 백복(伯服)을 낳았고, 포사에 빠진 유왕은 정실부인 신후(申后)와 태자 희의구(姬宜臼, 훗날의 동주의 평왕)을 폐하고, 포사를 황후로 어린 백복을 태자로 삼습니다.

주유왕 포사를 웃겨라
포사는 요즘 말로 하면 "밀당의 고수"였습니다. 포사는 잘 웃지 않았다고 합니다. 주유왕은 포사의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봤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에 유왕은 포사에게 어떻게 하면 너를 웃게 할 수 있겠냐고 물었습니다. 포사는 자신이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웃을 만한 것도 없으나, 다만 비단 찢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좀 좋아질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주유왕은 매일 같이 비단을 찢게 했습니다. 이에 궁중의 비단이 모두 찢겨나가고 없게 되자 주유왕은 제후와 백성에게 비단을 징발했습니다. 그러나 포사는 활짝 웃지 않고 입술만 약간 움직였을 뿐입니다.
어느 날 병사의 실수로 적군의 침입신호인 봉화가 올랐습니다. 봉화가 오르자 적군이 침입한 걸로 안 제후와 병사들은 궁으로 몰려왔습니다. 병사들은 적군의 침입이 아닌 것을 알고 불만을 터트리면서 무질서하게 행동하여 왕궁을 소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마침 포사가 이 광경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포사가 웃자 유왕은 매우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유왕은 포사의 웃는 모습을 보기 위해 매일 거짓 봉화를 올렸습니다. 이에 병사들은 차츰 이 봉화를 믿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북방의 견융족이 쳐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진짜 봉화가 올랐지만, 제후와 병사들은 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주나라는 패하고 유왕은 죽고, 포사는 견융족의 포로로 끌려가서 자결을 했다고 합니다.
이를 여산봉화(驪山烽火)라고 합니다.

🟢 경국지색?
포사로 인해 경국지색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역사에는 한 나라의 멸망에는 여자를 부각시키는 스토리가 동서를 막론하고 다수의 이야기가 존재합니다. 실제로 아마 모든 나라의 멸망은 단지 여자 한 명의 존재가 유일한 문제는 아니었을 겁니다. 주나라가 봉화를 올려 제후국의 도움을 청하는 것도 이미 주나라의 군사력이 그만큼 약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앙이 약해지면서 제후국들이 강대해졌다는 것입니다. 물론 주유왕의 폭정으로 인해 제후국은 이미 주유왕에 대한 충성심이 없었을 겁니다. 또한 사기를 보면 오랑캐인 견융이 주나라를 공격한 계기는 신(申) 나라의 제후의 딸인 신후(주유왕의 정실부인)의 폐출당하자 신나라는 반감을 품고 견융을 끌어들었다고 합니다. 이후 신나라는 노나라, 허나라 등의 제후국들과 폐위당한 태자 희의구를 옹립시킵니다. 도읍을 낙읍으로 천도했고, 이때부터 동주(東周) 시대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희의구 평왕(平王)의 제위 기간에 주나라의 왕실은 점차 쇠약해지고, 차츰 제후국인 제(齊), 초(楚), 진(秦), 진(晋) 나라가 강성해져 정치는 이들 제후국 중심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것이 동주 시대부터 진나라의 왕 영정이 6국 통일 시키기 전까지 약 500년의 전란,
춘주전국(春秋戰國)시대의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