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소군의 원망(昭君怨 怨望) <당(唐) 동방규(東方虬)>

2022. 12. 1. 20:11카테고리 없음

🟠  왕소군의 원망(昭君怨  怨望) <당(唐) 동방규(東方虬)>

昭君拂玉鞍 소군불옥안  
왕소군이 옥안장을 떨치며

上馬涕紅頰 상마체홍협  
말을 타니 붉은 뺨에 눈물이 흐른다.

今日漢宮人 금일한궁인  
오늘 한나라 궁녀가

明朝胡地妾 명조호지첩  
내일 아침 호국의 첩이 되는구나.

漢宮豈不死 한궁기불사  
어찌 漢나라 궁에서 죽지 못하고

異域傷獨沒 이혹상독몰  
異國 땅에서 홀로 죽음을 슬퍼하노라.

萬里馱黃金 만리타황금  
만리 길에 황금을 실어 보냈지만

娥眉爲枯骨 아미위고골  
고운 모습은 앙상한 뼈가 되었네.

廻車夜黜塞 회차야출새  
밤에 수레 돌려 변방을 나오려 하지만

立馬皆不發 입마개불발  
모두 말을 세우고 떠나지 못한다.

共恨丹靑人 공한단청인  
화공(畵工)을 원망하며

墳上哭明月 분상곡명월  
밝은 달 아래에서 무덤에 곡하노라.

胡地無花草 호지무화초  
오랑캐 땅엔들 꽃과 풀이 없으랴만

萅來不似萅 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自然衣帶緩 자연의대완  
자연히 옷 띠가 헐렁해지니

非是爲腰身 비시위요신  
이는 가늘어진 허리 때문이 아니로다.

이름은 장. 자는 소군. BC 33년 흉노와의 친화정책을 위해 흉노왕 호한야선우에게 시집가서 아들 하나를 낳았다. 그뒤 호한야가 죽자 흉노의 풍습에 따라 왕위를 이은 그의 정처(正妻) 아들에게 재가하여 두 딸을 낳고,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왕소군에 대한 이야기는 전설화되어 후대에 많이 윤색되어 전해졌다.

〈서경잡기 西京雜記〉에 따르면, 원제는 화공들에게 궁녀를 그리도록 명하여 그림을 보고 마음에 드는 여자를 불러들였다고 한다. 궁녀들은 모두 화공에게 뇌물을 주고 아름답게 그려달라고 했으나, 왕소군은 뇌물을 주지 않아 추하게 그려졌다. 원제는 그런 사실을 모르고 왕소군을 호한야에게 보내기로 결정한 후 그녀의 뛰어난 미모를 알고 나서 매우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외국과의 신의를 저버릴 수 없어 그녀를 보내고는 화공들을 죽였다고 한다. 또 〈후한서 後漢書〉·〈금조 琴操〉에는 왕소군이 몇 년 동안 황제의 관심을 받지 못하여 자진해서 흉노의 왕에게 시집갔으며, 그녀가 호한야의 아들에게 재가하게 되었을 때 독을 마시고 자살했다고 되어 있다.

이 이야기는 후세에 널리 전송되었으며, 많은 문학작품에서도 다루어졌다. 진(晉)의 석숭(石崇)이 작사·작곡하여 기녀에게 부르게 했다는 〈왕명군사 王明君辭〉는 매우 유명하다. 두보(杜甫)와 이백(李白)을 비롯해서 당대의 시인들도 이 이야기를 즐겨 썼다. 원·명대에는 희곡으로도 각색되었는데, 특히 원대 마치원(馬致遠)의 희곡 〈한궁추 漢宮秋〉가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昭君怨  왕소군의 원망(怨望) <당(唐) 동방규(東方虬)>

昭君拂玉鞍 소군불옥안  
왕소군이 옥안장을 떨치며

上馬涕紅頰 상마체홍협  
말을 타니 붉은 뺨에 눈물이 흐른다.

今日漢宮人 금일한궁인  
오늘 한나라 궁녀가

明朝胡地妾 명조호지첩  
내일 아침 호국의 첩이 되는구나.

漢宮豈不死 한궁기불사  
어찌 漢나라 궁에서 죽지 못하고

異域傷獨沒 이혹상독몰  
異國 땅에서 홀로 죽음을 슬퍼하노라.

萬里馱黃金 만리타황금  
만리 길에 황금을 실어 보냈지만

娥眉爲枯骨 아미위고골  
고운 모습은 앙상한 뼈가 되었네.

廻車夜黜塞 회차야출새  
밤에 수레 돌려 변방을 나오려 하지만

立馬皆不發 입마개불발  
모두 말을 세우고 떠나지 못한다.

共恨丹靑人 공한단청인  
화공(畵工)을 원망하며

墳上哭明月 분상곡명월  
밝은 달 아래에서 무덤에 곡하노라.

胡地無花草 호지무화초  
오랑캐 땅엔들 꽃과 풀이 없으랴만

萅來不似萅 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自然衣帶緩 자연의대완  
자연히 옷 띠가 헐렁해지니

非是爲腰身 비시위요신  
이는 가늘어진 허리 때문이 아니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