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1. 03:05ㆍ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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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의 여인들 1 -1 동탁과 王 美人
때는 한제국(漢帝國) 중흥(中興)의 조(祖), 광무제(光武帝)로부터 11대가 지난 효령황제(孝靈皇帝) 유굉(劉宏) 시대의 일이다. 황제는 정사는 돌보지 않고, 관직을 팔아 사복을 채우며 환관들을 중용하고 외척에게 주요 직위를 주었다. 조정의 부패가 극에 달하니 하늘이 조정을 버린 것인가. 어느 날 파란 구렁이가 옥좌(玉座)에 앉고 암탉이 수탉이 되고 대지진과 해일이 일어났다. 메뚜기 떼가 밭을 메우고 기아로 아사자가 속출하였다. 측근과 환관들이 보고조차 하지 않으니 황제 유굉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였다.
유굉은 13세에 즉위하였다. 20여 년간 낙양의 궁전에서는 매일같이 연회를 열었다. 전국에서 가려 뽑은 미녀들과 함께 환락을 즐기는 게 그의 주요 일과였다. 이 어리석은 황제는 그것이 자기가 해야 할 일이라고 믿고 있었다. 환관들 또한 황제를 돈과 여자와 술에 빠뜨려 정치에 마음 쓰지 못하도록 책략을 써 왔다. 환관 가운데 제일 윗자리의 열 명을 십상시(十常侍)라 하였는데 조금이라도 그들을 비판하는 자는 국외로 추방하거나 참혹하게 살해하니 백성들은 그들의 이름만 들어도 두려움에 떨었다.
환관의 두목이자 황제로부터 아버지라 불리는 장양(張讓)은, 매일의 일과로서 금소(禁所)에 드나들었다. 황제는 반나체 상태로 취해 있기 일쑤고 주위에는 노래와 춤이 질펀하게 펼쳐지는 가운데 술과 음식이 넘쳐흘렀다. 여자들도 아편에 취해 나체로 지냈다. 누워 있는 나체 여자의 음부에는 남근을 본뜬 장형(張形)이 박혀 있기도 하였다. 환관들은 여자와 관계를 가질 수 없는 몸이라 금소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지만, 성욕을 채울 수 없는 한을 풀기 위해 대신 권력다툼과 돈벌이에 열중하였다. 황제가 가장 아끼고 집착하는 왕 미인(王美人)은 몸을 움직이기만 해도 상의가 찢어질 만큼 크고 아름다운 유방을 가졌다. 장양은 황제가 없으면 그 부드럽고 탄력 있는 유방을 쓰다듬고 즐겼으나 거기까지뿐이었다. 그는 ‘황제여, 마음껏 즐기시오. 우리 십상시는 비록 여자를 어떻게 할 수는 없으나 그대보다 더 부자올시다’ 하고 속으로 외쳤다. 또한 ‘아들아, 정치는 이 아비가 할 터이니 너는 지금처럼 그렇게만 계속 지내다오. 설령 비명에 간다 해도 새 황제를 옹립하여 이 권세 천년만년 누리리라’, 그렇게 속말을 하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 왕 미인의 불안
왕 미인은 눈만 뜨면 언제나 황제의 몸 위에 있었다.
왕 미인이 15세 나이로 제의 측실(側室)이 된 지 어느덧 7년. 7년 전 왕 미인의 아버지는 그녀를 대가로 고관의 요직을 샀다. 모든 것이 돈으로 통하는 세상인지라 아름다운 딸을 가진 자는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었다. 황제는 매일 궁녀를 상대로 치정소동을 벌이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반드시 왕 미인을 껴안고 지냈다. 아무리 탐해도 싫증이 나지 않는 것이 두 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관직을 팔아 돈을 버는 것과 아름다운 여자를 품는 일이었다.
황제는 왕 미인을 품을 때면 ‘쾌락이란 끝이 없구나, 단지 그 쾌락을 끝없이 즐길 수 있는 시간과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것이 원망스럽도다’ 하고 한탄하였다. 황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동안 일반 백성들은 남녀관계는커녕 초근목피로 근근이 연명하고 있었다. 황제는 백성이란 어차피 그런 존재들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러니 만백성의 주린 창자에서 나는 가여운 소리보다 왕 미인의 교태 섞인 신음이 훨씬 중요하였다.
그런 왕 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면 시녀들이 꽃잎과 향수가 든 통을 가져와 몸을 씻겨 주고 화장을 해 주고 옷을 입혀 주었다. 거울에 비치는 왕 미인의 가는 허리와 매끄러운 손발과 긴 목, 눈처럼 흰 살결, 큰 유방, 빛나는 눈동자를 보며 시녀들은 감탄과 함께 질투 어린 눈길을 감추기 바빴다. 왕 미인을 질투하다 못해 증오하는 여인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하 황후였다.
황제가 “그대는 누구보다 아름다우니 죽을 때까지 안고 싶다”고 속삭이자 왕 미인은 “저 또한 황제 폐하의 품에 이렇게 안겨 영원히 지내고 싶습니다. 하지만 하 황후가 저를 시기하여 저와 아들 협을 해할까 늘 두렵답니다” 하며 얼굴 가득 수심을 드리웠다.
“그게 무슨 소리냐?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짐이 끝까지 지켜 줄 것이니 아무 걱정 말아라.”
황제가 안심시켰으나 왕 미인의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게다가 황제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져 가고 있었다. 저러다 덜컥 자리에 눕기라도 하면….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왕 미인은 황제의 생모(生母)인 동 태후(童太后)를 더 자주 방문하게 되었다. 황제에게는 하 황후가 낳은 장남 유변(劉弁)이 있으나 동 태후는 왕 미인이 낳은 유협(劉協)을 더 귀여워하였다. 유변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 6살에 지나지 않은 유협은 유변보다 총명하였고 왕 미인을 닮아 외모 또한 수려하였다. 어린 유협이 어머니에게 그날그날의 일을 꼬치꼬치 보고하니 왕 미인은 아들이 나날이 철이 든다고 기뻐하였다. 영악한 왕 미인은 황제의 사랑 속에서 아들 유협을 키우며, 동 태후를 등에 업고 황제의 어미가 되는 야망을 키워 나가고 있었다.
• 영제 (靈帝)의 죽음에 의한 세습 다툼
어느 날 황제는 여느 때처럼 궁녀와 노닌 후 왕 미인의 방으로 갔다. 그러나 그녀를 안아도 남근이 말을 듣지 않았다. 당황한 황제는 그녀의 옷을 찢으며 짐승처럼 난폭한 행동을 하다가 지쳐 돌아갔다. 왕 미인은 두려움에 떨며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또 다른 황제의 무서운 모습이었다.
며칠 후 황제는 왕 미인을 불러 강제로 하반신을 노출시키고 음부에 장형을 넣었다. 장형에는 가죽끈이 달려 있고 가죽끈은 허리에 묶게 되어 있었다. 황제는 열쇠가 달린 기구로 장형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조치하였다.
“폐하, 제발 이것만은 말아 주세요.”
왕 미인이 몸을 비틀며 호소했으나 황제는 간단히 무시했다.
“짐은 이미 남자의 역할을 할 수 없는 몸이다. 이제 너를 더 이상 안을 수 없구나. 이 장형은 나 자신과 같은 것이니 항상 몸에 지녀야 한다. 열쇠는 내가 가지고 있으니까 필요할 때는 말하마.”
장형에는 황제의 이름인 ‘宏(굉)’이라는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몸 한가운데 장형을 단 왕 미인은 처음에는 걸을 수조차 없었다. 시녀들의 목욕 시중도 뿌리쳐야 했고 특히 아들 협이 이 사실을 알까 조마조마하였다. 용변을 볼 때면 너무도 수치스러워 홀로 울음을 삼켰다. 황제의 그녀에 대한 애착이 도를 넘어 탐욕적이고 광적인 소유욕으로 변질돼 갔으니 왕 미인은 황제를 원망하며 야위어 갔다.
중평 6년(189). 황제가 연회석에서 갑자기 쓰러져 자리에 눕게 되었다. 병이 깊어져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황제는 십상시 건석(蹇碩)을 불렀다. 건석이 동궁(東宮)을 내정하실 것을 청하니 황제가 병상에서 대답하였다.
“짐은 협이 태자로 적합하다고 생각하오. 동 태후께서도 협을 아끼고 있고 그러니 왕 미인이 황후가 되는 것이 좋겠소. 나이는 형 유변이 많지만 그릇이 작고 범용하니 말이오.”
십상시들도 유협을 태자로 삼는 데 찬성하였다. 마음이 놓인 황제가 마침내 숨을 거두었다. 유굉은 그 무능 때문에 영제(靈帝)라 했다. 십상시들이 모인 자리에서 두목 장양이 말했다.
“우리가 유협을 지지하면 하 황후와 하진 장군이 가만있지 않을 거요.”
“제가 돌아가신 사실을 잠시 감추고, 세습 문제로 제가 보자 한다며 불러들여 죽이는 것이 어떨는지.”
십상시 건석이 말했다. 다들 동의하자 하진(何進) 대장을 부르러 갔다. 궁 안에는 병사들을 잠복시켰다. 그런데 첩자가 이 음모를 하진에게 일러바쳤고 분노한 하진은 5000의 군사와 함께 궁전에 들어가 십상시에게 외쳤다.
“황제의 승하를 감춘 채 태자를 폐하고 협을 황제로 세우려 들다니! 이런 음모를 꾸미고도 너희가 감히 살기를 바라느냐!”
그러고는 건석을 칼로 베니 장양과 환관들이 모두 머리를 숙이고 사죄하였다.
“장군을 해하려 한 자는 오직 건석뿐이옵니다. 우리는 모두 반대했습니다. 그저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이에 하 황후가 하진을 타일렀다.
“죄진 자는 건석뿐인가 보오. 다른 자들은 그만 용서해 주지 그래요.”
하진은 우유부단한 데다 또한 누이동생을 어려워해 나머지 사람들을 용서하고 말았다. 다만 그 자리에서 태자를 유변으로 바꾸고 황태후 자리에 하 황후를 앉혔다. 유협은 발해왕(渤海王)에 봉하였다(후에 다시 진류왕·陳留王으로 격하시킨다).
유변의 어머니인 하 황후는 하층계급 출신이었다. 하지만 키가 크고 피부가 뽀얀 미인인 그녀는 십상시의 추천을 받은 데다, 천한 집안 출신이니 외척이 힘을 쓰지 못할 거라는 동 태후의 계산에 힘입어 황후가 된 것이다. 그녀의 오빠인 하진은 원래 돼지 잡는 일로 생계를 유지한 자였다. 누이동생이 태자를 낳자 그 힘으로 관위(官位)를 얻어 출세해 어린 나이에 무관의 최고위 대장군이 되었다. 하진은 이제 한나라의 모든 군대를 통제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 황후는 왕 미인이 황제의 총애를 받게 되자 그녀를 날마다 미워하게 되었다. 귀인(貴人)도 아니고 미인(美人) 주제에, 아들을 낳았답시고 저리 사랑을 받다니 용서할 수가 없었다.
왕 미인은 하 황후의 잔인한 성정으로 볼 때 언제 위험이 닥칠지 몰라 유협과 함께 동 태후의 관에 숨은 채 병을 핑계로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하 태후와 하진은 선제(先帝)의 어머니인 동 태후에 대적할 수는 없어 눈엣가시 같은 왕 미인과 유협을 당분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자식을 지키기 위한 왕 미인의 도박
백성들은 나라의 혼란 속에서 흉년과 천재지변과 과도한 세금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궁전 중축에까지 동원되면서 피골이 상접한 몰골들이었다. 관리는 뇌물로 모든 일을 해결하니 썩을 대로 썩었고, 이에 뜻 있는 자는 토지를 버리고 유랑민이 되었다. 또는 도적이 되거나 황건적에 들어가 조정 타도를 위한 반란군을 결성하였다. 부패한 조정이었지만 그럴수록 나라를 염려하는 이들도 각지에서 늘어났다.
원소(袁紹)와 조조(曹操)도 정의감과 우국의 뜻을 품고 낙양에 왔으나 부패한 조정을 보며 그 원흉이 십상시와 환관들임을 알게 되었다. 정치권력을 장악한 십상시·환관들 대(對) 병권을 장악한 하진 오누이의 대립은 더욱 격해졌다. 십상시는 하진을 제압코자 동 태후를 선동하였다. 동 태후의 조카인 동중(董重)을 장군으로 삼고 군대를 내려 궁전을 지키게 했다. 동 태후 자신도 궁전에 나가 정무를 보았다. 하 태후는 권력욕을 내비치는 동 태후가 다시 진류왕 유협을 들고 나올까 두려웠다. 이에 자주 연회를 열어 동 태후와 왕 미인을 초대해 의중을 살폈다.
“여자가 나라 일에 개입하면 흉사가 흔하다는 옛말이 있지 않습니까. 조정의 일은 대신과 원로에게 맡기는 것이 순리라고 봅니다.”
하 태후의 입에 발린 말에 동 태후는 “태후야말로 오빠 하진의 권한을 믿고 자기 아들을 제로 삼으니 이는 선제의 유언을 무시하는 게 아니고 무엇이오. 보시오. 선제는 협을 제로 삼았어요. 우리는 지금 선제의 은혜를 저버린 꼴이 되었소. 돼지 잡던 일족이 어찌하여 나라를 좌지우지하게 되었는지 통탄스러울 뿐이오” 하고 치를 떨며 쏘아붙였다.
왕 미인은 두 사람의 살벌한 설전을 들으며 살아도 살아 있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하 태후와 동 태후 사이에 설전이 있은 그날 밤, 하 태후와 하진은 군대의 중진들을 불러 모았다. 바로, 병권을 쥐고 있는 동중 장군의 관을 포위하고 장군 지위를 반환하라고 윽박질렀다. 동중은 형세를 되돌릴 수 없다고 보고 자살하고 말았다. 하진은 이어서 동 태후도 잡아 가두었다. 위험을 느낀 장양 등 십상시는 급히 금은보화를 모아 하진의 친척 중 고위직에 있는 자에게 건네고 보호를 요청했다. 우유부단한 하진은 친척의 말만 듣고 십상시를 계속 중용하였다. 그런 와중에도 하진은 몰래 자객을 보내 동 태후를 암살하였다.
동 태후라는 큰 배경을 잃어버린 왕 미인은 마지막 수단에 호소했다. 동 태후와 동중의 먼 친척뻘인 서량의 태수 동탁(董卓)에게 구원을 청하기로 한 것이다. 왕 미인은 아들 유협의 이름으로 피가 밴 밀서를 써서 동탁에게로 보냈다.
선제께서 본인의 황위 계승권을 인정하고 나라의 후사를 맡겼으나 하진 장군과 하 태후가 범용한 형 유변을 황위에 앉히려고 허위문서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을 바로잡으려고 한 동 태후와 장군 동중도 살해되었습니다. 나는 진류왕으로 봉해져서 지금 목숨이 위험합니다. 정치를 맡은 십상시들은 자신들의 보신에만 열중하며 나쁜 짓을 일삼고 있습니다. 역적 하 일가를 물리치고 조정을 바로잡아 환관을 배제하고 선제의 뜻을 이어 나가기 위해서는 동탁 장군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군을 이끌고 가능한 한 빨리 낙양에 들어오기 바랍니다.
원래 야심을 품고 있던 동탁은 밀서를 받자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역적 십상시를 친다는 표문을 들고 병사들을 이끌고 급히 낙양으로 들어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