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30. 09:23ㆍ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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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 전투 - 적벽대전(赤壁大戰) 4
주유는 마지막으로 손권에게 조조의 군사를 비교적 정확하게 계산해 주었다. 당시 조조는 자신의 군사가 80만 대군이라고 주장했지만, 그건 겁을 주기 위한 허풍이었다. 실제로는 북방에서 이끌고 온 군사 15, 16만에, 형주의 유종에게서 흡수한 7, 8만을 합해 약 20만 정도였다.
주유의 주장과 분석을 들은 손권은 승리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공식적으로 조조와의 전쟁을 공포했다. 조조와 결전을 벌이기로 방침이 정해지자, 손권은 주유를 대도독으로 임명하고 3만의 군사를 주어 유비의 수상 부대와 공동 작전을 펴 조조의 군대와 대전하도록 했다. 유비의 군사 1만, 그리고 유기의 군사 1만을 더해도 5만밖에 안 되는 병력이었다. 5만의 병력으로 호왈 80만의 병사와 맞붙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실제는 20여 만이었지만.
한편, 적벽(赤壁)에 포진하고 있던 조조의 군사들은 모두 북방 출신으로 남방의 풍토에 적응하지 못해 병이 든 데다가 대부분 배를 타 본 일이 없어 배멀미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한겨울인 12월의 찬바람은 바다같이 넓은 장강에 드높은 파도를 일게 했으며, 이 파도에 배가 심하게 요동했기 때문이었다.
조조는 이의 해결책으로 배를 모두 쇠고리로 연결한 후, 그 위에 널빤지를 깔아 한덩어리로 만들어 배가 파도에 요동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조조로 하여금 이렇게 배를 묶도록 만든 계책을 연환계(連環計)라고 하는데, 배를 한덩어리로 묶으면 화공에 취약하다는 것을 조조가 모를 리 없었지만, 당시는 서북풍이 부는 계절이었고, 조조는 북쪽에 포진해 있었으므로 화공을 당할 염려는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겨울철 초입에 서북풍이 강하게 이삼 일 분 다음 최소 하루나 이틀 이에 대한 역풍이 불고, 이것이 다시 약해진 다음 이삼 일쯤 있다가 서북풍이 강해진다는 기상관측 통계가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역풍이 바로 삼국연의(三國演義)에서 제갈량이 도술을 부려 일으켰다는 동남풍이다.
당시 장강에서 고기잡이하던 어부들도 다 알았을 법했던 이 기상 현상을 북방 출신인 조조와 그의 군사들이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렇다고 물어보지도 않는 일을 어부들이 스스로 찾아와 알려 줄 리도 만무할 것이고 말이다.
천시불여지리(天時不如地利)라고 하지 않던가?아무리 때가 좋아도 현지의 지리적 여건을 모르면 당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렇게 보면 총명한 사람도 전혀 생소한 남의 동네에 가면 자칫 바보가 될 수도 있는 법이란 말이 우스갯소리만은 아닌가 보다.
주유와 유비의 연합군은 화공으로 나왔다. 먼저 황개(黃蓋)를 거짓으로 항복하도록 하여 몽충(蒙衝,폭이 좁고 긴 배로 적선과 충돌하여 침몰시키는 배)과 투함(鬪艦, 전함)을 조조의 선단에 접근시킨 후,화공을 퍼부었다.
때마침 불어오는 동남풍에 조조의 선단은 불길에 휩싸였고, 적벽 일대는 아비규환의 생지옥으로 변하고 말았다. 불에 타 죽고, 불을 피해 강으로 뛰어든 사람은 물에 빠져 죽었다. 조조는 대패하여 자신의 근거지인 허창으로 되돌아갔다.
그동안 힘이 조조로 기울어 있었는데, 적벽의 싸움 이후 힘의 균형이 어느 정도 잡혔다. 후에 유비는 우여곡절 끝에 제갈량의 계책에 따라 형주와 익주를 차지하여 발판을 굳혔고, 손권은 강동을 굳게 지켜 동남쪽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이로써 삼국의 정립(鼎立) 형세가 틀을 잡게 된 것이다.
적벽의 싸움이 있은 지 8년 후인 216년에 조조가 위왕(魏王)에 올랐으며, 219년에 유비가 한중왕(漢中王)을 칭했고, 222년에 손권이 오나라를 건국하고 건업(建業)에 도읍을 정했다.
삼국연의(三國演義)에 흥미진진하게 그려진 적벽대전의 이야기들 중, 제갈량이 주유를 자극하기 위해 그의 부인 자매인 이교(二喬)를 판 이야기, 제갈량이 손권의 대신들과 설전을 벌여 대신들을 꼼짝 못 하게 만든 이야기, 방통이 조조로 하여금 배를 묶도록 연환계를 쓴 이야기, 주유가 장간(蔣干)을 이용해 반간계를 쓴 이야기, 주유가 병이 들자 제갈량이 동남풍이라는 약을 처방하여 낫게 한 이야기, 주유가 제갈량을 곤경에 몰아넣기 위해 열흘 안에 화살 10만 개를 만들라고 하자 안개가 가득한 밤에 제갈량이 배를 띄워 적군의 화살 10만 개를 벌어 온 이야기, 그리고 적벽대전의 하이라이트인 제갈량이 도술을 부려 동남풍을 일으킨 이야기, 그리고 대단원에 해당하는, 싸움에 패한 조조가 본국으로 도주하며 화용도를 통과하다가 매복하고 있던 관우를 만나 목숨을 구걸한 이야기 등등은 정사에 기록되어 있지 않거나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던 일들로, 삼국연의를 통해 마치 역사적 사실인 양 우리에게 알려진 내용들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제갈량을 적벽대전의 기획과 연출, 주연까지 맡은 지모와 책략을 겸비한 불세출의 군사(軍師)로 그렸지만, 실제 적벽대전의 주인공은 주유와 조조이다. 제갈량은 당시 막 출사(出仕)한 27세의 백면서생으로, 단지 손권과 유비의 동맹 과정에서 일정 역할만 했을 뿐이다. 당시 손권과 제갈량은 27세, 주유는 34세, 노숙은 37세, 유비는 47세, 그리고 조조는 54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