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국지 전투 - 적벽대전(赤壁大戰) 3

2022. 11. 30. 09:20카테고리 없음

🔴 삼국지 전투 - 적벽대전(赤壁大戰) 3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신하들의 입장에서 보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적에게 투항하는 것이 본인과 그 가족에게 더 안전한 법이다. 그러면 대개는 본인과 가족의 성명을 보존하고 본인은 자리를 그대로 지킬 수가 있으니까. 하지만 주군(主君)은 갈 곳이 없게 된다. 노숙은 바로 이 점을 들어 손권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

이제 상황은 유비를 돕느냐 안 돕느냐의 문제에서,조조에게 투항하느냐 대결하느냐의 문제로 옮겨졌고, 손권은 최종적으로 유비와 연합하여 조조와 싸우기로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오늘날의 호북, 호남성에 해당하는 형주와 사천성에 해당하는 익주(益州)는 당시 13개 주 중에서 가장 큰 주였으며, 천하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꼭 손에 넣어야 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한고조 유방도 익주를 발판으로 하여 일어나지 않았던가.

하여, 일찍이 유비가 제갈량을 맞으려고 삼고초려했을 때 제갈량은 유비에게 천하를 셋으로 나누어 정족(鼎足)의 형세를 만들자는 계책을 올렸다. 정족이란 솥의 발을 말한다. 솥은 발이 세 개인데, 이는 물건을 안정되게 세울 수 있는 최소한의 숫자이다.

당시 제갈량의 천하 삼분 계책의 주체는 북방의 조조, 강동의 손권, 그리고 유비였다. 물론 유비가 형주와 익주를 차지한다는 전제하에서였다. 이것을 융중대(隆中對), 즉 융중의 대책이라고 한다.

그런데 융중대가 나오기 7년 전, 동오의 노숙이 이미 천하 삼분의 계책을 수립하여 손권에게 권한 적이 있었다. 노숙의 천하 삼분 계책의 주체는 북방의 조조, 동오의 손권, 그리고 형주의 유표였다. 때가 되면 먼저 형주를 손에 넣고, 이어 익주를 차지한 다음 북방의 조조와 대치하다가 북벌을 하여 천하를 통일한다는 원대한 계책이었다.

그 당시 손권의 나이 18세였고, 형 손책이 죽고 막 대권을 이은 상황이라서 추진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지금 조조가 손을 써 형주를 먼저 취했다는 사실은 손권과 노숙에게 큰 충격과 위협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두 개 이상의 물체가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지점을 점유하는 것을 이르러 충돌(衝突)이라고 하는데,적벽대전은 이처럼 조조, 손권, 유비의 야심이 충돌한 일대 사건이었다.

조조와 싸우기로 결정을 했지만 아직 군사력에서 확신을 가질 수가 없어 여전히 주저하고 있는 손권에게 확신을 준 것은 주전파의 수장 격인 주유였다.주유는 네 가지 이유를 들어 동오가 반드시 승리하고 조조는 반드시 패한다는 확신을 손권에게 심어 주었다.

本土未安, 後患未除, 貿然南下.
(본토미안, 후환미제, 무연남하.)

첫째, 조조는 내부가 아직 안정되지 않았고, 후환이 아직 제거되지 않았는데 경솔하게 남하하여 진공을 했다.

조조는 당시 중국의 북부를 막 장악한 상황이긴 했지만 아직 내부가 안정되지 않았고, 서쪽으로는 마등(馬騰), 마초(馬超), 한수(韓遂), 장로(張魯) 등의 군벌이 여전히 활약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조조가 손권을 치기 위해 남하한 것은 참으로 경솔한 행위였다.

放棄鞍馬, 使用艦船, 舍長就短.
(방기안마, 사용함선, 사장취단.)

둘째, 말을 버리고 배를 사용하자는 것은 장점을 버리고 단점을 취하는 일이다.

남선북마(南船北馬)라는 말이 있다. 물길이 많은 남쪽의 주요 교통수단은 배고, 산야가 많은 북쪽의 주요 교통수단은 말이라는 뜻이다. 자연히 북방에는 보병과 기병이 우세하고 남방에는 수군이 우세하다. 수전 경험이 없는 조조의 군사들이 물귀신인 남방의 수군을 어떻게 당하겠는가? 이것이 바로 주유가 주전론을 펼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天寒地凍, 馬無草料, 給養不足.
(천한지동, 마무초요, 급양부족.)

셋째, 날씨는 춥고 땅은 얼어붙어 말을 먹일 양초가 없고, 군량도 부족하다.

적벽대전이 일어난 것은 건안 13년(208)의 한겨울인 12월이다. 조조는 시기를 잘못 선택한 것이다.

勞師遠征, 水土不服, 必生疾病.
(노사원정, 수토불복, 필생질병.

넷째, 피로한 군사를 이끌고 원정을 했으며, 풍토가 맞지 않아 반드시 질병에 걸리게 된다.

북쪽의 군벌들을 친 지 얼마 되지 않아 군사들이 지쳐 있었으며, 물과 땅이 낯선 남방의 땅에서 풍토가 맞지 않아 쉽게 질병에 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제갈량도 조조가 필패할 수밖에 없는 3가지 이유를 제시했는데 역시 주유의 주장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勞師遠征(노사원정)
첫째, 피곤한 군사를 이끌고 원정을 했다.

舍長就短(사장취단)
둘째, 장점을 버리고 단점을 취했다.

人心不服(인심불복)
셋째, 민심이 불복한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주유의 주장과 동일하다. 세 번째의 뜻은, 조조가 비록 투항한 형주의 군대를 흡수하긴 했지만 군사들이 조조에게 충성을 다 바쳐 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계속)